중용 인간의 맛 Books

표지가 이렇지 않은데...그림의 출처인 <알라딘>에서는 이렇게 되어있군요. 

당연하지만 정말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저는 도올 김용옥씨가 노자에 대해 강의할 때 부터 TV 강의를 시청해왔습니다. 조금은 거칠지만 그러한 퍼포먼스가 주는 통쾌함이 있고, 또 어렸을 때 슬쩍 슬쩍 보아온 공자의 논어나 대학, 소학, 노자의 도덕경, 중용, 장자 등의 이야기 중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짚어주시는 것도 좋았으며, 워낙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보니 중국의 책 뿐아니라 성경, 세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볼 때는 이해하지 못한 점을 되새기기 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 했기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정말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었다는 것을 책을 읽으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용이라는 어려운 책에 대해서 지금의 한국의 모습 그리고 세계의 문화와 역사 등을 접목시켜 해설해주기 때문에, 중용에 다가가기에는 그리고 흥미를 북돋게 하기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여, 너무나도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언어를 넘나드는 도올 김용옥씨의 해설은 보는 읽는 이가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놓치게 되고 길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종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이해를 힘들게 만드는 느낌도 없지 않아 들었습니다.

게다가 종종 보여주시는 단호한 한국 정치나 사회에 대한 일침은, 강의로 보았을 때는 호쾌하고 통쾌한 느낌이 들었지만 책으로 읽자니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 오히려 기분이 별로 좋아지지 않는 부분도 보이더군요. 저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도올 김용옥씨의 글이 읽고 싶은 사람과, 중용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에게만 이 책을 추천하고 싶군요. 그렇지 않은 분들께는 너무나도 힘겨운 책이되지 않을가 싶습니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알지 못하여 관심이 일지 않는 분들에게 간단하게나마 어떤 글들이 이 책에 담겨 있는지, 제가 인상깊게 본 부분들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런데 "중용"에 대한 가장 큰 일반인들의 오해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자세에 있어서 어떤 행동규범상의 "가운데"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는 근거없는 통념에 관한 것이다.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중용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호언하는 자는 결국 회색분자도 안되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중용"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문제의 핵심을 도피하거나, 적당한 타협을 유도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머뭇거림의 지겁한 방편을 제시하는 그런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나 자사는 그러한 "중용"을 말한 적이 없다. 

내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인터넷세계를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무기탄의 글올리기"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거리낌"있는 사고와 독서로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할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쓸데없는 리플이나 달고 앉아 세월을 허송한다면, 큰 인물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농부가 겨울의 휴식을 위하여 봄, 여름의 노동을 마다하지 않듯이, 그러한 "거리낌"의 축적을 지금 청춘의 소중한 시간 속에 쌓아나가기를 당부한다.

"호문"이란 끊임없이 가슴을 열고 타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중대사에 있어서 홀로의 판단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호문"이라 해서 자신의 판단을 흐리지는 않는다. 판단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타인의 앎을 "물음"을 통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덕성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이다. ...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너무도 물을 줄을 모른다. "물음"이 없고 자기주장만 있다. 그 "주장"이라는 것도 너무 저열한 인식의 소산이 대부분이다. 물어라! 물어라! 묻기를 좋아하라! 얼마나 지당한 공자의 말씀인가!

제 13장 도불원인장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아니 하다. 사람이 도를 실천한다 하면서 도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도를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시는 말한다: '도끼자루를 베네. 도끼자루를 베네. 그 벰의 법칙이 멀리 있지 않아.' 도끼가 꽂힌 도끼자루를 잡고 새 도끼자루를 만들려고 할 때에는 자기가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흘깃 보기만 해도 그 자루 만드는 법칙을 알 수 있는 것이어늘, 오히려 그 법칙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도리를 가지고서 사람을 다스릴 뿐이니,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잘못을 고치기만 하면 더 이상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충서는 도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 하다. 자기에게 베풀어보아 원하지 아니 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지어다. 군자의 도는 넷이 있으나, 나 구는 그 중 한가지도 능하지 못하도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아버지를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형님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붕우에게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베풀었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항상스러운 범용의 덕을 행하며 항상스러운 범용의 말을 삼가하여야 한다. 이에 부족함이 있으면 감히 힘쓰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요. 이에 여유로움이 있으면 절제하고 조심하여 감히 자고치아니하여야 할 것이다. 언은 반드시 행을 돌보아야 하며, 행은 반드시 언을 돌아보아야 하니, 군자가 어찌 삼가하여 독실하지 아니 할 수 있으리오!

그러기 때문에 그 문명의 주체인 인간은 "자기를 바르게 하면서 나의 삶의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서 구하지 말아야 한다.正己而不求於人" ... 나의 존재의 "바름"은 오직 나의 소관이다. 나를 바르게 하는 것은 나의 문제이며, 나를 바르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지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데서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항상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해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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