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포스팅한 <귀담백경>과 세트라고 할 수 있는 <십이국기>작가 오노 후유미씨의 호러 소설 <잔예>는 위 표지에도 적혀있듯이 일본 제 26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독자 중 한명의 사연을 함께 조사하며 토지에 남아있는 염(念) 같은 것에 의한 영향으로 오카야 맨션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심사하던 작가들은 오노 후유미씨가 왜 소설이 아닌 서베이(survey)나 수기 같은 것을 제출했는지 의아해했다고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작가가 겪은 사건과 시기가 실제 오노 후유미씨가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연히 <잔예>는 소설이라고 후기에서는 못을 박고 있다. 작가들이 느낄 정도로 이 책은 매우 사실적이고, 사건에 대한 조사와 사실만을 담담히 담은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호러 장르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색다른 스타일은 단점 또한 지니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치 작가가 조사한 사실만을 나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책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서 몇몇 독자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호러 소설과 같이 긴장감이 극대화 되는 부분 역시 많지 않다. 종종 살인사건이나 자살사건이 등장하고 작가나 작중의 인물들이 기묘한 힘에 의해 위험에 처하는 듯한 묘사도 있지만, 역시 소설 전체적으로 주는 느낌은 담백한 느낌이 있으며 이는 호러 장르에서는 어쩌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스타일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목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다 읽을 때까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이는 앞서 설명한 듯이 책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실적인 느낌때문에 책이 현실감을 가지게 되었다. 독자는 다 읽을 때까지는 "뭐가 무서운거지?", "뭔가 심심하네..." 라는 감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덮은 순간 책의 내용이 현실로 다가온다. 이 점이 이 책의 무서운 점이다.
<잔예>는 오카야 맨션이라는 토지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이 겪은 끔찍한 사건들이 만든 먼 옛날부터 남아있는 염(念)을 소재로 다루며, 오노 후유미는 이를 "잔예"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 끔찍한 사건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원혼에 의해 타인을 해하거나 방화,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들이 다시 죽고 남은 잔예를 통해 그 다음 세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 비슷한 행동을하거나 기묘한 사건을 겪는다. 게다가 이는 해당 토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토지에 머물렀던 사람이 이사감으로써 전염되는 듯이 보인다.
책의 담담하고 사실적인 서술방식이 토지라는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땅"에 얽혀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현실감있게 살림으로써 "혹시 우리 집은...?" 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며 뭔가 찜찜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엄청 무섭고 공포스럽다라는 표현보다는 뭔가 으슬으슬 등 뒤에 붙어 계속 따라올 것만 같은 오싹함을 독자에게 준다.
혼자 느끼기에는 아쉬운 느낌이었다. 색다른 느낌의 호러 소설을 접해보고 싶은 호러 마니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덧글
일본 호러소설은 시귀밖에 안 읽어 봤는데 탁한 공기에 억눌리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ㅎㅎ
(시귀의 만화, 애니화는 초실망...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