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미스테리 소설로서 가지는 재미 이상을 품은 소설 Books

이 책은 미스테리 소설로서 고립된 섬에서 발생한 3중 밀실 살인사건을 공학부 조교수 사이카와와 그 제자인 니시노소노가 해결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학점하고도 연관지어져 유명해진 제목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던지라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금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송 중인 본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뒷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 96년에 간행된 제법 나이를 먹은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사이카와 교수는 건축학 조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에 관심이 많으며, 이번 이야기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주요 소재도 컴퓨터에 관련된 것이며 첫 피해자는 천재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가타 박사이다. 
나의 전공 역시 컴퓨터 시스템 쪽인지라 친숙한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FTP라느니 바이러스니, 트로이 목마니, if문이라거나 unsigned short라던가...그리고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가타 박사가 설계 및 제작했다며 등장하는 운영체제 '레드 매직'은 실존하는 '레드햇'을 떠오르게 하였다. 
물론 이 책은 살인사건을 다루는 미스테리 소설이므로 너무 전문적인 컴퓨터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다. 책이 간행된 96년이라는 시기만해도 지금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옛날이니 아무래도 시대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컴퓨터 공학도로서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소재면에서 이렇게 나의 흥미를 끌었으니 미스테리 소설적인 면으로는 어떨까?
잔뜩 똑똑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니 만큼 똑똑해보이는 발언이나 있어보이는 대사가 많이 등장하고, 그런만큼 개성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여 흥미롭다. 무엇보다 인간을 벗어난 것만 같은 마가타 박사의 모습에서는 노자키 마도의 작품 <映 암리타>에 등장하는 천재가 떠오른다(시대적으로 이 작품이 앞섰지만). 


추리의 유도 그리고 트릭에 대해서는 ... 사실 아주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힘들었다.
일단 미스테리 소설을 어느정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범인이 등장하는 순간 제 1용의자로 지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게다가 마가타 박사의 팔다리를 자른 진의, 컴퓨터를 이용한 알리바이 조작 트릭같은 것 역시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3중 밀실 트릭인데, 기본적으로 컴퓨터가 트릭으로 쓰인 이상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것을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 작품은 이를 제법 성공적으로 풀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트릭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과 모든 트릭을 가능하게 해주는 컴퓨터의 취약점을 하나하나 배제하고, 트릭에 사용할 하나만을 남겨두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독자가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무의미한 추리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밀실의 핵심이 되는 미츠루의 존재. 이것은 사실 반칙이나 다름 없다. 상상력의 부족이다,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에서도 언급한 밀실 사건의 법칙을 이해하면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14살부터 15년간 감금 생활했던 여성이 가졌을 사연까지 떠올리는 것은 추리의 범주가 아니라 상상의 범주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방송 중인 애니메이션에서는 소설에서는 다루지 않은 마가타 박사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비중있게 추가하여 다루고 있다. 이로써 미츠루의 존재를 애니메이션 시청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한가지 더, 두 번째 희생자가 어째서 살해당했어야 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복수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를 살해했고, 살해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것은 작중의 인물들이 언급하는 가상현실, 네트워크와 연결짓는 사상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이 것이 점차 발전해나가면 사람은 서로 만날 필요가 없다, 그런 시간과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는 사이카와 교수의 말에 나 역시 공감하였다. 물론 나 자신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 직접적인 접촉과 타인의 간섭 없이 네트워크만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니시노소노가 반박한 말에 공감한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과연 이대로 기술이 발전하여 네트워크가 더욱 견고해지고, 가상현실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면 세계는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까? 
본 책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건축학에 줄 영향을 생각해본다는 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나에게 큰 호기심을 남겨주었고, 컴퓨터 기술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내가 깊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구에 대한 것. 작품 해설의 세나 히데아키씨의 글에도 언급되었듯이 최근 나를 가장 괴롭히는 의문이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것은 지난 <Q.E.D. 증명종료> 최신간에 대한 리뷰를 했을 때도 살짝 언급했었고, 본격적으로 다루자면 끝도 없이 말이 길어지므로 본 작품에서 사이카와 조교수의 입을 빌려 내놓은 '연구'에 대한 작가의 말을 적어두고자 한다.

"우리 연구자들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 무책임이 유일한 장점이거든. 그래도 백 년, 이백 년 뒤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들뿐이라고."

이공계생과 젊은 연구가들에게 흥미위주이든 뭐든 좋으니 한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게 만드는 구절이라고 생각했다.


사이카와 교수와 니시노소노의 활약은 이 작품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이후의 글들도 상당히 공학 친화도가 높은 것 같은 만큼 <Q.E.D. 증명종료>와 비슷한 느낌으로 매우 기대된다. 게다가 이번에 모습을 감춘 천재도 다시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떤 재회를 하게 될지 기대되기도 한다.
이후 출판되는 책들도 모두 읽어볼 예정이다.

p.s.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자 분께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듯 오역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몇 군데 보였다는 것이다. 아마 이번 작품에서 '로그'라고 번역된 부분은 long 타입 변수를 오역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어는 long을 ロング, 우리나라 발음으로 하면 '롱구'로 표기한다) 아마 unsigned short 타입 변수와 함께 설명하고 있으니 맞을 것이다. 그밖에 용어에서도 사용된 조사가 적절해보이지 않은 것이 보였다. 앞으로 출판될 책들은 이 점이 좀더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p.s.2.
이 작품이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송할 수 있다는 일본이 대단하다. 내용 상 한국 기준으로 이야기 하자면 미풍양속을 해하는 이야기로 가득한 작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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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2SNAKE 2015/11/08 21:00 # 답글

    추리로서는 시리즈 전체가 순서적 합치... 뭐... 말맞추기랄까요;;; 암튼 그런 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서 그쪽을 기대하시면 오래 보기 힘드실 거예요.
    그보다는 캐릭터물로서 읽으시면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 될 겁니다. 08년까지 단편이 나올 정도니... 팬클럽 예약 한정 기념본이었지만...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최대 메인 트릭 역시 그것의 논리적인 대단함보다는 작품 내내 흐르는 기류와 캐릭터성의 임팩트를 극대화시키는 효과 정도로 생각하시면 편한... ㅎㅎㅎ
  • LionHeart 2015/11/09 11:03 #

    말씀하신대로 캐릭터물로서 매력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마음에 들고, 개성적인 인물들과 그들이 하는 대사도 은근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재미있게 읽었네요. 다음 책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센프 2015/11/11 22:59 # 답글

    동기 면에 있어선 전 시리즈 공통입니다. 사실상 모든 주역들이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정신상태의 소유자들인지라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사실이죠. 최신간(?)인 2권에 등장하는 범인들의 동기가 그나마 본 시리즈 중에서 가장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동기일 듯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사이카와와 모에의 연애질을 다룬 연애소설이라고 봅니다(......).
  • LionHeart 2015/11/12 00:09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사이카와와 모에와의 연애질 이야기이기만 해도 제법 즐길 수 있을 것 같군요 :)
    최근 방송 중인 애니메이션에서는 책으로 읽었을 때 보다 모에가 상당히 짜증나는 캐릭터로 표현되었기에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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