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학생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Books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기로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2학년 때 이 책을 읽고, 진로를 고민하고 3학년 때는 준비하며, 대학들어가서 다시 읽고, 졸업시 대학원과 취업을 결정하는 것이 어떨지? 물론 대학원 들어가면 한번 더 읽어야 한다.

책이 작가가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모리 히로시인 만큼 워낙 이공계 쪽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아마 이 책에 공감하기는 이공계생이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한 하시바는 꿈꿔온 대학과는 다른 모습에 실망한다. 졸업논문을 준비 중 기시마 선생의 제자 나카무라 선배를 만나고 인식이 바뀌며 자신이 열중해야 할 것들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기쁨을 느낀다. 이후 기시마 선생을 만나 이상적인 연구자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공감, 두려움, 동경을 느끼게 되었다.

작중의 배경은 일본의 20년도 더 오래전을 무대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니던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원 시스템도 상당히 비슷하다. 작중에서는 아직 개인 컴퓨터가 보급되기도 전인 펀치타입 프로그래밍을 하던 시기이지만 시스템과 문화는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하시바처럼 특출난 사람도 아니고, 연구에 그리 뜻을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연구에 뜻을 두려면 작중의 하시바가 존경하는 기시마처럼, 그만큼은 못미치더라도 주인공 하시바처럼 연구에 뜻을 두고 한없이 동경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당히 세속적이고 저속적인 욕망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아마 그들처럼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대한 생각, 좀더 어렸을 때 느꼈던 공부라는 것에서 느낀 성취감, 대학에 대한 이미지 등에 크게 공감했다. 그때 느꼈던 또는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글로 정리하면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을 정도로 글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에 하나였던, 나 스스로가 처한 연구와 논문이라는 테마에 대한 글이 있어 인용한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것은 연구가 아니다.' 이것도 기시마 어록 중 하나야."
선배는 연구실 소파에 몸을 깊이 묻고 과장된 손짓을 더해 말했다.
"논문을 작성함으로써 정리가 된다는 이점은 있지만 시간이나 노동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마이너스지. 논문을 정리하는 동안에는 연구가 스톱되거든. 정말 연구를 빨리 진행하고 싶다면 논문 따윌 쓸 여유는 없을 거야."
...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어요."
"나도 같은 말을 기시마 선생님께 한 적이 있어."
선배는 미소를 지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내게 암벽등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암벽등반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혼자서 한 번만 오르는 거라면 최소한의 이정표만으로 충분하지. 계속 오르면 돼. 그런데 뒤에 같은 길을 올라오는 녀석이 있는 거야. 자신도 그곳을 또 지날지도 모르고. 그런 경우를 위해서 제대로 서비스를 해두는 것이 연구자의 양식인 거야, 그러니까..."
...
"원인을 따지자면, 원래 남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귀찮은 행위야. 그보다 귀찮은 일이 없을 만큼 귀찮지. 쿠와바라 쿠와바라."
...
"연구 성과로 무얼 알 수 있죠?"
자신이 한 연구인데도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잘 몰랐다.
"나온 결과가 아는 것의 전부야. 그게 다야."
"그것뿐이에요?"
"이렇게 했더니 근갓값을 유도하기가 쉬웠다. 이 숫자를 쓰는 것이 계산이 잘 맞는다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망라하는 수밖에 없어. 그것밖에 아직 모르잖아."
"네, 전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아야..."
"전체는 아무리 해도 안보여."
"그래요?"
"응, 안 보여."
"선배님, 본인의 연구 가치는 알죠?"
"솔직히 몰라."
"몰라요?"
"얼버무려서 아는 척하는 것뿐이야."
"그렇구나."
"몰라, 그런 거."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지."
"그 말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거네요?"
"자기만족할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은 상태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다는, 그런 멋진 일이 또 어디 있겠어. 그건 가치가 아주 많은 거야."
"그런가...모르는데도 논문으로 써야 하는 거네요?"
"그렇지."
"어렵네요."
"가끔은 신기루처럼 말이지. 기적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 꿈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야."
평소의 선배치고는 매우 문학적인 표현이었다.
"아무튼 결론을 쓰고, 마지막에 목적을 쓰는 거죠?"
"응, 결론을 쓰면 그 결론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하는 문장을 쓸 수 있어. 그걸 맨 처음에 갖다 놓으면 돼. 어때, 간단하지?"
"왠지 사기 치는 거 같아요."
"남을 설득하기 위해 문장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야. 여기서 남이란 다시 말해 아마추어지. 모르는 사람을 알게 하는 게 설득 아냐? 이건 거의 반은 속임수야."
...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면서 이 정도로 몰두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입시 공부를 할 때도 이렇지 않았다. 유일하게 있다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 이것과 가까운 체험을 했을지 모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출제된 수학 문제에는 반드시 답이 있다. 풀기 쉬운 길이 있고, 그곳을 더듬어가면 이것이 정답이다 하는 최종 목적지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멀리서 봐도 처음부터 빛이 나기 때문에 벌레처럼 본능적으로 밝은 쪽을 향해 나가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는 지극히 '곤충적'이었다. 그것은 생각한다고 하기보다 유인당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연구를 시작하고 내가 만난 사고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완전히 이질적이다. 물론 환하게 빛나는 결승점은 없다. 주위는 사방이 캄캄해서 자신이 더듬어온 길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령 비약적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어서 무언가 손에 닿는 느낌이 있었어도 거기에는 '이것이 맞다'하는 증명서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맞는다는 것은 직접 확인하고 자신에게 설득당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대학원생이 되어 반년 쯤 지났을 때 그런 것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두려운 일로, 눈앞의 대상에 몰두했을 때는 일시적으로 잊을 수 있지만, 문득 의자의 등에 기대어 숨을 내쉴 때 나는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얼까, 이대로 가면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거기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엄습하곤 한다. 그렇게 되면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몸이 떨린다.
어쩌면 이런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걸지도 모른다. 바삐 움직이는 동안에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평소보다 너무 많은 인용을 하여 분량도 많아졌기에 내가 더 첨언하기 힘들 것 같다.
이와 같은 논문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행정적인, 세속적인, 연애적인,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주옥같은 이야기도 가득 담겨있다. 정말 추천사에 적혀있는대로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 들고 공감가는 것들 투성이라서 두고두고 읽겠다라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이러한 공감을 느낀 뒤에는 불현듯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었고,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소, 이 시간이 하시바가 마지막 장에서 그렇게 그리워하고 부러워하는 그 순간, 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서 나 역시 이렇게 마음 편히 있을 장소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가지고 있었던 불안감이 더욱 확실시 되어 두려웠다.
그런만큼 더욱 연구와 지금에 열중해야 할 텐데 어째서 내 몸은, 정신은 다른 쾌락적인 무언가를 쫓는 것인지 한숨도 함께 나온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느낀 것은 하시바와 같은 인생에 대한 동경이었다. 기시마는 나의 롤모델로 적합하지 않다. 모든 것보다 연구를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그에 의해 희생되는 것들을 좌시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없다. 하시바는 정말 기적적으로 인생에서 절망할 시기에 최고의 선배를 만나고, 최고의 스승을 만나며, 최고의 반려를 만났다. 그야말로 그의 반려인 스피카는 이름 그대로 주인공 하시바의 별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작중에서 그녀가 그에게 보내는 행동과 말들이 모두 감동적이다. 
그런 멋진 만남,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걸어나간 하시바에게 부럽게 느껴졌다.


아직 대학을 들어가지 않은 학생들은 이 책을 읽고 대학에 대한 인식을 다시 가지고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없기 바라며,
대학원을 꿈꾸는 학생들은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 강력히 추천한다.

물론 책, 소설인 만큼 어느 정도 이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면이 있다. 그러나 연구하는 이가, 공부하는 이들이 현실에서 만날 문제들에 조언이 될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 담겨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이상을 들이밀며 거짓을 고하고 위로하는 글이 아닌, 현실을 느끼고 인정하며 그럼에도 이상을 쫓는 글들이다.
공부와 연구에 꿈을 둔 이들에게 이 책은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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