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피크닉>을 재미있게 읽어 온다 리쿠라는 작가님의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디서인가 이 책이 작가님께서 쓰신 미스테리이자, 상당히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고 덜컥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총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며, 각 단편은 다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자 재미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작중의 인물들이 언급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 역시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중의 책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4명의 노인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행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시사, 과학, 미스테리, 판타지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때로는 끝을 맺고 어떤 것은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는 짧은 논쟁, 사건풀이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두 명이 한 명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둠 속의 길을 나아가며 목적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도달하기 전에 이야기는 끝이 나고 맙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피의 이야기입니다. 혈연 관계인 두 사람이 겪는 갈등과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작가 자신이 책을 집필하며 겪은 상상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어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책, 즉 제가 손에 잡고 읽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흥미롭게도 작중의 책의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가면서, 동명의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기다리는 사람들'은 매년 봄에 이루어진 회사 회장이 주최하는 2박 3일의 별장 생활에 주인공이 초청받아 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별장에서 주인공은 회장을 포함한 4명이 노인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기이한 소설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별장 어딘가에 숨겨져있을 그 책을 찾는 내기에 참가하게 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이즈모 야상곡'은 두 여성 편집자가 전설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의 저자를 찾아 야간열차를 타고 이즈모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인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작중에서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다른 자매인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들의 지인들이 두 사람에게 있었던 비극적인 이야기를 되짚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회전목마'는 앞의 세 에피소드의 저자, 즉 온다 리쿠,의 집필 중에 있었던 영감과 생각들을 여과없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오노 후유미의 <잔예>와 같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 작가와 겹쳐보이는 작품이라거나, 아리카와 히로의 <스토리 셀러>와 같이 작중의 작가가 이야기를 쓰고, 다시 그 작중의 작가가 이야기를 쓰는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이런 부류의 소설들은 이야기가 마치 진짜 있었던 일처럼 여겨지며 생동감, 현실감을 띄기 때문입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약간 다른 구조이지만 같은 이유로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책 속의 각 에피소드에서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집필 중이기도 하고, 이미 집필이 완료된 경우도 있고, 앞으로 집필될 예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작가는 책에 실려있는 앞의 세 에피소드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지만, 작중에 등장하며 후기라는 이름을 빌리지 않은 만큼 진짜 '온다 리쿠'라고 생각해야할지 어떨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호함이,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본 소설의 책을 언급하고 있는, 책이 책을 안고 있는 구조가 흥미롭고 또 기이함과 신비한 느낌을 안겨다주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에피소드 '이즈모 야상곡'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록 독자에게 주어지는 단서 없이 작중 인물들이 한 사람을 탐색해 나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조금씩 작중의 인물이 증거를 보여가며 목표로하는 인물을 탐색해 나가는 이야기는 기대했던 미스테리 소설의 느낌을 가지기 충분했습니다.
반면 세 번째 에피소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잔인한 비극, 그것도 아직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가장 재미없었던 것은 네 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뒤죽박죽이다보니 나중에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수준으로 읽었습니다. 도중에 한번은 골아 떨어지기도 했군요. 솔직히 집중할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할 수 없는 글이었기에 지면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언급이 없는 첫 번째 이야기는, 그냥 오타쿠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이는 작가님의 생각을 옮긴 것이라 생각해도 될까요? 아니면 소설이라 과장된 것일까요?
이 책은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번역가 권영주님께서 2015년 제 20회 고단샤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하였고, 온다 리쿠 작가님 본인에게는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입니다.
실제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이후 시리즈 형식으로 연작이 출판되며,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발전되어 작중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인 <흑과 다의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또한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작가가 상상 속의 이야기를 언급할 때 등장한 리세의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황혼녘 백합의 뼈>와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라는 책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어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네 번째 이야기가 너무 불만족스러웠기에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읽는다고 해도 <흑과 다의 환상> 정도만 읽지 않을까 싶네요.
작품 구조가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이니, 미스테리를 좋아하고, 독특한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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