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의 상자 (상-하): 너무나도 엽기적이고 슬프면서 기이한 이야기 Books

교고쿠도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망량의 상자>를 지난 휴일을 이용해 읽었습니다. 지난 <우부메의 여름> 때 한 권 읽는데 필요한 시간이 많았기에, 교고쿠도 시리즈는 이번과 같은 연휴때를 이용해 읽고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권당 6시간 정도 소비했군요. 나름 중요하지 않은 부분(정확히는 저의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은 속독했는데도 말이죠. 


<망량의 상자>는 교고쿠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 미디어 믹스(코믹스, 애니메이션, 영화, 러브플러스와의 콜라보?)도 이루어졌고, 4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어째서 그렇게 인기가 많고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애초에 이렇게 어둡고 엽기적이며 잔인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제가 '정말 싫지만...너무나도 싫지만...인정할 수 밖에 없어!'라고 외칠 정도로 책이 재미있습니다. 


전작과 다르게 이번 사건은 이야기의 진입점이 한 곳이 아닙니다. 크게 보자면 한 소녀가 열차에 치이는 사건과 무사시노에서 발견된 여자의 팔다리만이 발견되는 엽기사건, 상자를 모시는 사이비 종교의 유행 세 개로 볼 수 있습니다. 상관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서로 연관된 것으로 여겨지더니, 다시 4개, 5개의 독립된 사건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우연이나 다름 없는 기연으로 인해 하나로 연결됩니다. 이런 전개에 있어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 절묘합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소재면에서 경악스러울 정도로 엽기적이고 잔인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쉽게 추천도 못하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 책을 읽은 뒤 멘탈이 가루가 되었는지 평소 뇌에서 안쓰던 쪽에 자극이 강했기 때문인지 곧장 두통으로 쓰러졌습니다.
<우부메의 여름>을 읽었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이야기가 상, 하권으로 이루어져 길었기 때문인지 하권 중반에 살짝 긴장을 풀어버렸고, 그대로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리뷰를 작성하며 표지를 보고 어떤 내용일지 각오 했었어야 했는데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권 초반 즈음을 읽을 때는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화, 그것도 캐릭터 디자인에 CLAMP가 참여했다는 소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멘탈이 박살나는 그 끔찍한 묘사를 보고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아오키 형사에게 트라우마가 될 뻔한 그 장면을 애니메이션에서도 다루었다면 솔직히 감상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같지 않은 엽기사건을 다루며 사건의 전개와 해결은 현실적인 면을 갖추되 인물의 정신적인 면이나 작품 분위기에는 아키히코가 두르고 있는 독특한, 요괴가 등장할 법한 기이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워낙 엽기적인 일을 다루고 있는터라 해결편에 있어 '그럴 수가 있냐?!'라고 따지고 싶은 오버스러운 감이 있는 전개는 다소 있습니다만 그런 면 또한 이 작품의 잔인함, 엽기성, 비극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이런 작품에 내성이 있다면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저는 <우부메의 여름>을 읽고 너무나 멘탈에 금이갔고, 이번 <망량의 상자>로 가루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책에 관련한 소소한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작중에는 '범죄'에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주인공 추젠지 아키히코가 지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지. 동기란 세상을 납득시키기 위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네. 범죄는- 특히 살인은 대부분 경련적인 거야. 그럴싸하고 있을 법한 것일수록 범죄는 신빙성이 더해지고,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세상 사람들은 납득하지. 그런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네. 세상 사람들은 범죄자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만, 특수한 정신 상태에서만 그 무도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걸세. 다시 말해 범죄를 자신들의 일상에서 분리하고, 범죄자를 비일상의 세계로 내쫓아 버리고 싶은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은 범죄와는 인연이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증명하고 있을 뿐일세. 그렇기 때문에, 그 이유는 알기 쉬우면 쉬울수록 좋고,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네. 소위 말하는 유산상속, 원한, 복수, 치정 관련, 질투, 자기 몸보신, 명예와 명성의 유지, 정당방위- 모두 알기 쉽고, 그러면서도 주위에는 흔히 없는 것들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이 왜 알기 쉬운가 하면, 있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실은 그들에게도 빈번히 일어나는 감정과 동질의 것이기 때문일세. 약간 규모가 다를 뿐이지."
길을 잃고 미마사카 연구소를 향해 달려가는 차 안에서, 나는 분명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아츠코에게서도 들었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폭론이야.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무시하다니, 그럼 고의나 과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과실은 사고지. 미필적 고의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구별해야 하네. 어렵겠지만 말일세."
"하지만 교고쿠도, 그렇게 해서는 사회질서가 유지되지 않아. 범죄행위라는 것은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그것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도덕이나 윤리,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동기를 무시한다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없어지고 마네."
"도덕관이나 윤리관까지 법률로 규제해 버린다면 그것은 그저 공포정치지. 사상이나 신앙은 법률에 대해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나? 법률은 행위에 대해서만 유효한 걸세. 게다가 생각만 해도 처벌받는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죄인이 되고 마네. 동기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아니, 살인 계획도 다들 세우고 있네. 실행하지 않을 뿐이지. 도덕이니 윤리니, 그런 것은 법률이 만들어내는 게 아닐세. 사회라는 괴물이 은근슬쩍 만들어내는 거야. 환상이지."
라고 교고쿠도는 말했다.
알고 있다.
이 남자와 토론해 봐야 헛수고다.
...
"그리고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아무리 해도 납득할 수 있는 동기를 발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회적 책임능력이 없는 상태라는 그런 판단이 나오는 걸세. 이건 도피지.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은 전부 정신병이니 신경증이니 하는 블랙박스에 쳐넣어 버리면 된다는, 걸핏하면 등장하는 편의주의일세. 폐기당할 참에 선택된 신경증이나 정신병 입장에서 보자면 또 얼마나 귀찮겠나. 게다가 그 경우에는 그런 라벨만 붙여놓고 무죄방면이라니까. 사회적으로는 배제해 놓고 들판에 놓아주는 걸세. 범죄자는 차별하고, 또한 범죄자는 놓아준다. 본말전도 아닌가? 바보 같은 일이야."
...
"뭐, 범죄생물학이라는 분야는 형태를 바꾸어 제창되는 게 당연한 거겠지만, 이제 와서 유전적 결함이니 체형과 기질이니 하는 것으로 사물을 논한다면, 그거야말로 심하게 비난받을 걸세. 하지만 이제는 범죄의 동기부여도 거의 그런 선천적 범죄설- 범죄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범죄자의 소질을 갖고 있다는 사고방식과 다름없는 것으로 되어 가고 있네. 그 남자는 이러이러하니까 범죄를 범한 것이라고 라벨링 함으로써 납득한다-. 이것은 형태를 바꾼 선천적 범죄설이지. 선천적이 후천적으로 바뀌었을 뿐일세. 이 경향은 앞으로도 확대될 테지. 심지어 나는, 혈액형 따위로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유례없이 바보 같은 학설을 주장한 학자도 알고 있다네. 이처럼 노골적으로 '이방인'이나 '더러움'을 차별하기 어려운 사회에는 이런 숨은 차별이 유행하는 걸세."
"동기부여는 범죄자를 배제하는 차별이라는 건가? 하지만 범죄에서 동기를 삭제한다면 뭐가 남는다는 말인가?"
교고쿠도의 본의는 뭘까?
개인적으로는 교고쿠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특정 정신병 환자에 대해 강제입원조치한다는 정부의 결정이 떠올랐습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서 저는 정신병이니 여성혐오니 하는 것이 어째서 이렇게 크게 화제화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죄는 죄로서 다루어져야 하지 범인의 정신상태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까? 저는 그쪽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심신상실자에 대한 무죄판례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복잡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등장인물에 대해서 말하자면, 여전히 이번 이야기에서도 세키구치는 짜증 폭발입니다. 이녀석도 상자에 넣었어야 했는데...분명히 <우부메의 여름> 이후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어째서 자꾸 등장하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반면 주인공의 여동생 추젠지 아츠코는 더욱 등장해주었으면 좋겠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애니메이션 모습을 보니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라서 너무 좋았습니다. 심지어 성우를 쿠와시마 호우코씨가 맡아주셨다니...너무 좋네요. (다만 성우분의 전설(?)은 제발 아츠코를 피해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점으로도 나쁜 점으로도 매우 인상깊었던 작품입니다. 교고쿠도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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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불멸자Immorter 2016/06/07 22:41 # 답글

    애니도 정말 좋습니다 ㅎㅎ 딱히 호러스러운 연출도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 LionHeart 2016/06/07 22:45 #

    아...정말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긴 TV로 방송이 나갔을테니 BD, DVD도 아닌 이상에야 그런 끔찍한 장면이 그대로 방송되지는 않겠지요...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ㅁ;
    정말 소설로 봐서 더 그럴까요? 머리에서 그린 해당 장면 때문에 게슈탈트 붕괴가 오는 것이...정말 절로 글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졌습니다.
  • 불멸자Immorter 2016/06/07 23:57 #

    음 다시 찾아봤는데... 애니 마지막도 잔인하긴 하네요 ;ㅁ;
    역시 보시려면 어느정도 각오는 하셔야...!
  • LionHeart 2016/06/08 11:00 #

    으어어어....OTL....일단 무기한 연장하는 거로...
  • 조훈 2016/06/07 22:52 # 답글

    현재 개정 2판까지 나왔습니다. 1판에는 저도 관여한 작품입니다. 많이, 아주 많이 늦었지요.

    괜찮은 시리즈라 생각합니다. 나머지 시리즈는 약간 억지스러운 괴기 추리,
    무당거미의 이치 편이 다소 짜임새 있는 추리를 지향하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 LionHeart 2016/06/08 10:48 #

    재미있는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인상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실은 이전 리뷰에도 공개했지만 추천순서를 잘못받아서 뒤쪽 책을 먼저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구매 후 시리즈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읽지 않고 모셔두고 있네요.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Laphyr 2016/06/07 23:33 # 답글

    저는 1판으로 본 것 같네요.
    진짜 이 시리즈는 봤어도 본 것 같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지는 그런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흡입력은 엄청났는데,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금방 잊어먹었어요 (....)
  • LionHeart 2016/06/08 10:49 #

    그렇군요. 저는 아직 읽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이곳 저곳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잊어간다고 해도 표지와 함께 엽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ㅁ;
  • 아인베르츠 2016/06/08 11:36 # 답글

    다른 시리즈도 재미있죠
  • LionHeart 2016/06/08 12:13 #

    기대하고 있습니다. :)
  • 풍신 2016/06/08 14:43 # 답글

    제 망량의 상자에 대한 이미지는 상황은 현실적이고 리얼한척 하면서 갑자기 미묘~한 오버 테크놀러지가 나오거나 해서 말도 안되는 느낌인데, 그 황당한 부분을 은근슬쩍 추리 소설로 구색을 맞춰서 일단은 추리소설로서 이야기가 성립한다는게 신기하다는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정신병자건 아니건 범죄는 범죄이기 때문에 벌은 평등하게 줘야 한다고 봅니다.
  • LionHeart 2016/06/08 17:18 #

    오버테크놀로지 부분은 확실히 벙찌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저도 그 부분은 좋게 평가 할 수가 없네요.
    //
    인용한 부분 말고도 '범죄'와 '동기'에 대해 다룬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 누구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많이 공감했던 것 같네요.
  • 괴인 怪人 2016/06/13 08:34 # 답글

    인용한 내용들도 섬뜩하지만 미미사카와 교코쿠도의 문답도 제법 섬뜩하죠.
  • LionHeart 2016/06/13 10:46 #

    교고쿠도의 말은 궤변이라고 방어선은 치고 있으나 제법 흥미로운 주장이 많아 매 책마다 어떤 말을 할지 기대하며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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