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서의 우리: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Books

교고쿠도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철서의 우리'는 상중하 3편으로 나뉘어 총 1,500페이지에 가까운 볼륨을 가진 양장본으로 국내 출판되었습니다. 이번 추석 동안 하루에 한 권씩 격파(?)해서 겨우 읽었습니다. 볼륨도 볼륨이지만 어려운 단어나 일본 선종(대승불교의 한 조류)에 대한 배경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는지라 읽기 힘들었습니다.


이번 무대는 하코네 산중에 있는 여관과 절입니다. 여관과 절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승려가 살해되는 연쇄승려살인사건에 교고쿠도, 에노키즈, 세키구치 일행이 말려든 이야기를 다룹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광골의 꿈]에게 실망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건의 진상을 금방 파악해버려서 김이 샜기 때문이라는 개인적인 이유였습니다만, 이번 '철서의 우리'는 저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즐겁게 읽기는 쉽지 않은 작품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정말 많은 페이지가 사건을 교란시키고 등장인물들의 한심함을 부각하기만 할 뿐, 정작 이야기 중심에 있는 살인사건의 풀이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트릭도 없고, 음모도 없으며, 드라마도 없습니다. 범인이 마치 배고파서 밥을 먹었다 정도의 개념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어떠한 속임수도 없는 담백한 진실만이 드러나고 맙니다. 게다가 범인 역시 압도적인 페이지 수에 비하면 등장과 언급이 무척 적었던 인물이라서 속된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한 느낌이 듭니다. 동기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기도 했고, 이전 작품부터 살인범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면을 보이는 작품인 만큼, '사실 살인사건이란 것의 현실은 이런 별것 아닌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건 속에 담겨있는 드라마나 트릭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김빠지는 결말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해 저는 아직도 스즈의 이야기가 본 작품에 등장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승려인 소꿉친구를 찾는 이쿠보와 첩첩산중 속에 후리소데(미혼 여성이 입는 가장 격식을 갖춘 기모노)를 입고 기이한 노래를 부르는 어린 모습의 소녀 스즈의 이야기는 작품에 기이함을 불어넣고 사건을 교란시키는데 한 몫 합니다. 하지만 승려살인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으면서 정작 본 작품의 드라마틱한 요소와 클라이막스 부분을 뺏어간 이야기라 독자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철서의 우리'가 아니라 독립적인 작품으로 분리되어 다루어져야 했을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번 등장은 이 후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복선인 것일까요? 작중의 비극적인 요소, 이매망량의 요소, 상식을 벗어나는 요소라는 교고쿠도 시리즈의 특징을 모조리 담고 있으면서, 작품의 메인 스토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니 황당할만하도 하지 않나요?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불만입니다만, 세키구치가 계속 등장하는 것이 너무 못마땅합니다. 그는 여전히, 한결같이 한심합니다. 첫 번째 작품 [우부메의 여름] 리뷰에서도 제발 다시는 등장해주지 말라고 생각했던 인물인데 사건이란 사건에는 모두 머리를 들이밀고(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멍청한 언행만을 일삼으니 답답해 죽을 것 같네요. 교고쿠도의 '제발 좀 입좀 다물고 있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철서의 우리'에서도 그의 어설픈 공감능력과 오지랖, 그리고 엄청난 착각이 또 한번 비극으로 이끌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 못지 않게 구온지 영감의 멍청한 착각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군요. 뒤돌아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은 등장인물의 8할 정도가 너무나도 답답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었던 것 같습니다. 세키구치를 비롯하여 근거없는 결론을 내리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읽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대해서 불만이 많지만, 이제까지 망집을 요괴에 비유하여 이를 말(주술)로 쫓는 교고쿠도가 이기지 못할 상대인 선종의 수행승을 소재로 사용한 점을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자신만만하고 완벽해보이던 교고쿠도가 이기지 못할 상대라며 사양하는, 약한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당히 많은 페이지를 들여 소개했던 선종에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취하는 다양한 방법론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소개 된 공안(깨달음에 이른 선승의 언행을 기록한 어록)은 선(禪)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저도 생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승불교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이나 관심이 있으셨던 분들께서는 이 작품에 대해 어떤 감상을 가지실지 궁금하네요.


드디어 다음 이야기는 '무당거미의 이치'입니다. 사실 교고쿠도 시리즈 중에서 추천 받은 것인 이 책이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읽은 작품들은 이 책을 읽기 위해 읽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망량의 상자] 이후로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다음 이야기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큽니다.

핑백

  • LionHeart's Blog : 무당거미의 이치: 모든 것은 거미의 뜻대로 2016-10-03 13:11:36 #

    ... 다루어진 사건들의 특성들을 하나로 합친 듯한 구조는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사건에 대적하는 주인공 교고쿠도 또한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지난 작품 [철서의 우리]에서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종파인 선종과의 싸움을 통해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무당거미의 이치'의 거미는 교고쿠도마저 장기말로 이용하는 모습을 ... more

덧글

  • 불멸자Immorter 2016/09/17 21:35 # 답글

    세키구치가 화자이지 않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우부메의 여름부터 시작해서 장대한 삽질은 팬들에게서도 욕을 먹는 것 같습니다. 무당거미에서는 세키구치가 거의 안 나왔던 것 같은데...
    전 철서의 우리를 꽤 재밌게 봤습니다만 실망하셨다니 아쉽네요.
    무당거미의 이치는 입맞에 맞으시길 빌어봅니다.
  • LionHeart 2016/09/18 18:22 #

    흥미를 끄는 소재들이 뇌가 다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담겨있었던 점은 마음에 들었지만, 결말 부분에서 크게 아쉬움을 느껴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다는 느낌을 남긴 것 같습니다. (물론 등장인물들의 답답함에 상편과 중편에서도 오래 고통받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게 된 계기가 '무당거미의 이치'였는데,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어째 이거 1권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조사해보니...다섯번째 작품이더라...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지요. 저에게는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기에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 ㅁㅇ 2017/02/04 19:12 # 삭제 답글

    교고쿠도 시리즈 전체의 화법을 지탱하는게 세키구치 등의 인물들인데
    이걸 답답하다고 부정해버리면 괴기성, 자극적인 연쇄살인사건, 토막살인 등의
    소재 이외엔 남는게 없음. 이거 쭉 정리하면 그냥 삼류소설 나옴.

    마찬가지로 철서의 우리에서의 동기가 사소하다고 불평하는것도 난 이해가 안가는데
    소설 내에서 몇번이나 강조되는게 교고쿠도는 기도사지 형사나 탐정이 아니라는 부분임.
    기도사이기 때문에 우부메의 여름이나 철서의 우리 같은 작품에서 교고쿠도는
    씌여있는 세계를 부수는 일을 함.
    그 씌여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우부메의 여름에서의 세키구치의 말도 안되는 실수,
    철서의 우리에서의 말도 안되는 동기같은 부분이 합리성을 갖는거임.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보임.
  • LionHeart 2017/02/04 23:17 #

    말씀하신대로 저는 작품을 깊게 읽는 타입은 아닙니다.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셔도 부인할 말이 없네요.

    다만 세키구치의 경우에는 호오로 따진 감정을 적은 것입니다. 분명 그가 사라진다면 교고쿠도를 비롯한 강한 힘을 가진 인간들이 태클을 걸 존재가 사라지고, 그들의 개성 또한 살리기 힘들어지겠지요. 그러나 전 그런 위치의 인물이라도 조금은 성장을 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리즈의 시작부터 일관되게 한심한 세키구치같은 인물을 좋아할 수가 없네요.

    더해 교고쿠도를 위해 작품의 동기 및 말실수에 합리성을 쥐어준다는 말씀에는 공감하기가 어렵군요. 실제 작가님께서 그러한 의도로 쓰셨는지 어땠는지도 알 수 없고(작가님께서는 교고쿠도 시리즈라고 불리는 것 조차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씌여있는 세계이기에 불합리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합리성을 가진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는 씌어있는 세계를 떼어내는 기도사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합리성이 있는 것으로 대체될 수는 없습니다. 덧글을 남겨주신 분께서도 '말도 안되는 동기'라고 말씀하신 만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저는 이해하지 못한 것을 합리적인 것이라고 넘어갈 생각이 없기에 이해 하지 못했다고 리뷰에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처럼 어떠한 놀라움도 없이 납득할 수 없기만 한 것들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수는 있을지언정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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