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시블: 무거운 청춘 이야기는 힘겹다 Books

[빙과]로도 알려진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 '리커시블'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제목 '리커시블'은 'Recursible'로 '재귀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 'recursive'에서 지어진 말입니다. 프로그래밍이나 수학을 하시는 분이라면 많이 보셨을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제목은 주인공인 하루카가 이사 온 역사를 반복하는 그리고 반복하려하는 마을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실종된 후 새어머니의 고향인 지방 도시로 이사 온 하루카.
이사한 마을은 고속도로 유치 운동을 둘러싼 주민들의 암투와 예로부터 전해오는 미래를 예측하는 인물에 관한 전승이 뒤얽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사한 뒤로 남동생 사토루는 앞날을 예측하듯 묘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마치 그 말이 이루어지기라도 하듯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주인공인 중학교 1학년인 여학생 하루카는 정말 박복한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횡령하고 잠적하였고, 피가 이어지지 않은 새어머니와 그 아들 사토루와 함께 살아야 했지요. 보는 동안 초등학교 3학년생인 동생 사토루에게 너무 막대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사정을 알고난 지금은 더 심하게 비뚫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 강인한 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믿었던 아버지의 귀환으로부터 배신당하여 절망하고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몸을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그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제가 책속에 들어갈 수만 있었다면 데리고 나와 키워주고 싶더군요. 어차피 남이라면 사연이 있는 새어머니와 그 가족보다는 완전 타인이 편하지 않을까요? 의지하기 힘든 담임보다는 그나마 연이 닿은 역사선생에게 의탁하여 어떻게든 삶의 활로를 찾아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 장식한 하루카의 박복함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소개와 제목에서 암시하는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분명 이야기에 기이함과 섬뜩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새롭게 이사온 주인공, 외부인에게 텃새를 부리는 마을 사람들, 마을이 간직한 기묘하고 어두운 과거 같은 것은 오노 후유미님의 '시귀', [흑사의 섬], 아야츠지 유키토님의 [어나더]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은 지방색 짙은 미스터리를 기대한 제 바람과는 달리 하루카의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엮은 소재 정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루카가 사토루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지만, 엄밀히 말해 사건으로부터 그녀가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습니다. 역사선생이 공격받는 흉흉한 사건도 일어나지만 그 밖에는 사건이 주는 긴장감도 높지 않은 편입니다. 사건이 마무리되는 부분에서도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는 없고, 마을이 가진 비밀에 대한 해명도 없이 그저 하루카는 다음 날도 담담히, 꾿꾿하게(?) 살아가겠구나란 느낌으로 책은 마무리 됩니다. 아마 하루카는 동생을 납치한 일행들의 우두머리나 다름 없는 린카와 다음 날 평범하게 대화하지 않을까요?
마을이 간직한 어둠은 '마을을 위해 관리에게 몸을 바치는 소녀'와 제멋대로인 어른들의 자기사정에 따라 버림받은 하루카의 박복함을 겹쳐보이게 하기위해 다루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제 개인적인 기대는 빗나갔고, 어둡고 무거운 청춘 이야기는 힘겨워하기에 흥미롭게 읽었지만 끝맛이 좋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빙과'를 통해 요네자와 호노부를 접한 저로서는 본 작품을 비롯하여 [안녕, 요정]과 [보틀넥]이 지니고 있는 어둠을 견디기에는 버겁군요. 하지만 앞으로도 작가님의 다른 책을 계속해서 읽게 되겠지요. 그저 앞으로는 조금 더 살살해주시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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