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거미의 이치: 모든 것은 거미의 뜻대로 Books

교고쿠도 시리즈 다섯번째 작품 '무당거미의 이치'는 국내에 상중하 3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게 된 계기도 방문객 님의 이 작품을 추천받아서였기에,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라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 여행했다가 돌아온 느낌입니다.
허름한 여관에서 매춘부가 눈을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눈알 살인'이라는 연쇄살인사건으로 여겨지는 이 사건이 전개되는 한편, 같은 시간 기독교계 여학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살인사건이지만,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밝혀지는 어둠의 연결 고리. 무당거미가 펼쳐 놓은 무대 위에 작자를 지탄할 수 없는 막은 오르고, 교고쿠도와 친구들은 이번 사건에도 휘말리게 되는데-.
본 시리즈가 매 권마다 조금씩 다른 사건 구조나 서술 방식을 가지고,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듯이 '무당거미의 이치'도 앞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점들이 눈에 띕니다.

이 책은 에필로그가 상편 서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번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알고 시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어떤 경위로 끝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쫓게 됩니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나면 다시 상편을 펼쳐 읽게 되더군요.
반면 이런 구조 덕분에 거미가 누구인지에 대한 것은 사건 초기부터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의 구조 또한 진화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연관되지 않은 사건들, 사실 모든 것들이 하나의 사건이었던 것을 다룬 적은 있지만, 마치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거미줄'에 비유한 범죄의 판을 짠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미줄의 씨실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결코 관련되지 않는 평행적인 사건들인 반면, 날실에 해당하는 각 사건의 일부 구성요소가 연결되어 실은 큰 그림 안에서 그려진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는 앞에서 다루어진 사건들의 특성들을 하나로 합친 듯한 구조는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사건에 대적하는 주인공 교고쿠도 또한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지난 작품 [철서의 우리]에서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종파인 선종과의 싸움을 통해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무당거미의 이치'의 거미는 교고쿠도마저 장기말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 작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았던 그가 패배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피해를 막지도 못했고, 검거도 실패했다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인 것이 어째서 교고쿠도는 거미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요? 실로 교묘하여 법적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판을 짜고 많은 이를 살해한 자에 대해 유감은 표시할지언정 분노까지에 이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돈까지 손에 쥐어주고 도피를 눈감아주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군요. '남 일'처럼 처리하는 그의 모습에 조금 실망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미의 목적도 사실 전부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번 이야기에서만큼은 범인의 동기와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채 끝납니다. 독자는 교고쿠도와 친구들이 뿌려놓은 단서만을 가지고 추측해내야 합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인 범죄였던 만큼 목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군요. 제 나름대로의 추측은 하고 있지만, 세키구치와 같은 한심한 생각 뿐이라 신용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번 작품에는 세키구치 등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적어도 본편 중에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요. 덕분에 아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미련한 모습을 보여주는 학교 학장이나 이사장 같은 인간들이 등장하여 스트레스를 받긴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앞의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이 신선하면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에는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으로는 이번 작품이 최근 한국에서도 크게 이슈화되고 있는 여성권리 문제에 대한 것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을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읽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태도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한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여권에 대한 이야기에 일본의 요바이나 매춘에 대한 문화와 역사가 뒤섞이다보니 극단적인 면이 부각되고 한국인으로는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피해를 받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가해자에게 불쾌함과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래저래 최근 생각하는 바도 있어서 그런지 '무당거미의 이치'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것도 같습니다.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추젠지가 아오이에게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이니 남녀평등이니, 아무리 남자가 부르짖는들 전 영 와닿지 않더군요. 만약 본 작품에 등장하는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여성이 말했다면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했습니다.


다음 작품은 교고쿠도 시리즈 올스타전이라고도 하는 '도불의 연회'로군요. 무당거미도 재출연해준다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가 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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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onHeart's Blog : 도불의 연회: 연회의 준비 下 2017-05-08 19:50:45 #

    ... 겁니다. 그는 경찰과도 연줄이 있는데, 이번 사건에 얽힌 진상은 꽤 뿌리가 깊은, 이제까지 이야기 중 가장 스케일이 큰 내용을 다룰 것 같습니다. 오토로시 화자는 '무당거미의 이치'에 등장한 오리사쿠 아카네입니다. 그녀는 가족이 죽은 저택을 제철사업의 권위자인 하타 류조에게 판매하는 대신 그가 진행하고 있는 문화사업 '서복 연구회'를 ... more

  • LionHeart's Blog : 도불의 연회: 연회의 시말 下 2017-05-12 19:4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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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불멸자Immorter 2016/10/03 13:47 # 답글

    ㅎㅎ 다 읽으셨군요. 이번 권에서 기바슈의 발로 뛰는 수사가 전 인상깊었습니다.
  • LionHeart 2016/10/04 12:50 #

    이번에는 기바슈가 활약했지요. ^^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편이었습니다. ㅎ
  • 괴인 怪人 2017/03/19 15:10 # 답글

    처음으로 추젠지가 사건(민속)의 해체와 재구축에 실패한 경우죠..

    아니 손을 댈 수 없었다고 해야 옳을까요. 허허;
  • LionHeart 2017/03/20 11:02 #

    이후 에피소드에 무당거미와 재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둘이 다시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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