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은 사실 초반부가 초전개이고, 줄거리만 적어보자면 어디서 보았을 법한 한국 드라마같은 느낌이 듭니다.
여주인공 모리야마 미쿠리는 대학원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나 번번이 취직실패, 파견회사에서도 학력이 높다는 이유로 해고 됩니다. 어느날 아버지의 전 부하직원 츠자키 히라마사의 가사도우미 일을 주선받게 되며 그와 만나게 됩니다. 미쿠리는 가사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취직활동도 꾸준히 하지만 좀처럼 일자리는 잡히지 않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그녀의 '일처리'가 마음에 든 츠자키였지만 미쿠리는 곧 아버지의 정년퇴임이 다가오며 가족과 함께 도시를 떠나거나, 취직을 하여 생존해야한다는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미쿠리는 츠자키에게 '아내'라는 이름의 가사도우미 일을 제안하고, 이런저런 의견 조율 끝에 둘은 '사실혼' 관계로 '유급' 위장결혼을 하게 됩니다.
초전개라는 부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마지막 부분입니다. 취직을 해야한다고는 하나 만난지 얼마 되지않은 고용주에게 '위장결혼'을 직업으로 제안하는 여자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주인공은 ... 남자니까요. 물론 작중에서는 흑심 없이 생존본능(게이로부터)과 사회적 시선 및 멘탈 케어와 기타 등등을 위해 여러모로 이득을 본다고 계산했기 때문에 받아들였지만,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혼시 받는 타격은 여성이 클텐데 사회가 바뀐 것일까요? 어찌되었든 처음에는 진짜 결혼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역시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한 츠자키는 미쿠리의 거주지만 이전하고 주변에는 결혼했다고 선언하는 '사실혼' 관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둘은 이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매력적인 부분은 이 사실혼 관계에서 보여지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줄거리만 소개하자면 한국에서도 보았을 법한 드라마 내용 같습니다. 하지만 국내 드라마였으면 있을 우스꽝스러운 남녀간의 해프닝이나 남녀 애정행각같은 일이 적어도 1권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비지니스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이러한 관계에서 떠올릴 수 있는 육체적 관계나 비슷한 해프닝도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말 쿨하게, 그야말로 직장에서 일하는 프로와 같이 부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둘이 억지로 '사이가 좋은 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아보인다는 것이죠. 철저하게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임에도 차가움 보다는 따뜻함과 훈훈함이 느껴지는 바람직한 직장(?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 이도 저도 아닌,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지 않는 아슬아슬함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드네요.
이러한 관계는 마치 미혼 남녀가 그릴 수 있는 바람의 일부들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남성은 사회적으로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며, 익숙하지 않고 수행할 시간도 부족하다 느껴지는 가사(家事)를 '돈'이라는 재화로 당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얻습니다. 젊고 아름다우며 자신을 도와주는 여성이 곁에 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결코 일정 선 이상 넘어오지 않아 다툼이 일어날 일도 없습니다. 여기에 정서적인 공감마저 이루고 있으니 차가운 계약관계 이상의 것을 본 작품의 주인공 츠자키는 얻고 있습니다.
여성은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봉사에 가까웠던 가사를 수행하고 당당하게 '돈'이라는 재화를 얻을 수 있으며, 직업이다보니 고용주로부터 감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일에서 보람도 느낍니다. 업무시간도 정해져있기 때문에 업무시간 외에는 추가수당이 나올 뿐만 아니라, 일이 없을 때는 또다른 직업활동에 전념하거나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용주는 존경할 수 있는 인격자이자 자신에게 무해한 존재(초식남, 36세 모솔 동정)이며 업무 이상의 일로 얽혀서 복잡하게 고생하질 않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글이긴 하지만 몇몇 분들은 마음 속으로 그릴만한 정말 '편리한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이렇게 좋아보이는 관계에서도 어떤 트러블이 발생할 것이며, 결국 둘의 관계가 '비지니스'로 끝날 것인지 또는 파국이나 진짜 결혼하는 것과 같은 또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의 일'과는 선을 긋는 '결혼생활'을 '일'로서 취급할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권까지는 무난하게 흘러가고있습니다만 실제 '직장'이 유토피아가 아닌만큼 결혼을 '일'로 취급하면 해결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로부터 나타날 트러블도 있을텐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미쿠리의 51세 골드미스인 이모라거나 츠자키의 게이 동료와 미남 동료 등과 같이 개성적인 주변인물도 흥미롭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될런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코믹스 다음 이야기도, 드라마도 무척 기대되는군요. 그림이 익숙하지 않을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용만으로는 20-30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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