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커스: 고민 해볼 주제들과 놀라운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 Books

'빙과'를 비롯해 많은 국내에서도 많은 작품을 사랑받고 있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입니다. 단권인줄 알았는데 책날개를 보니 '베루프 시리즈'로서 다음 이야기가 있는 작품인가 보더군요. '안녕, 요정'에서 해결사로 등장했던 다치아라이 마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책 첫 장에도 전작의 주요 인물이었던 마야(마리야 요바노비치)를 언급하며 시작합니다만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은 없기에 본 책부터 읽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이전 책에서는 모리야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마치가 해결사임에도 그녀의 내면묘사같은 것은 부족했었습니다. 그때문일까요? 이번 작품에서 28살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제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 마치 처음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치아라이 마치는 취재를 위한 사전답사로 네팔의 카트만두를 방문하지만 황태자 일가가 살해당하는 잔혹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기자로서 이를 취재하기 위해 그녀는 왕실에서 근무하는 군인에게 접촉하지만 취재는 실패로 돌아가고, 다음 날 그가 몸에 '밀고자'라는 각인이 새겨진채로 사체로 발견되며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책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실려있습니다.
사상 최초 '야경'에 이어 2년 연속 미스터리 3관왕 달성.
2015년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6년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
2016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2016년 서점 대상 노미네이트
각각의 순위가 얼마나 의미있는가는 알 수 없겠지만, 책을 읽어보니 상당히 인상깊은 책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부분은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만, 이 책에서 제가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은 '보도'라는 소재를 다루는 점과 결말에서 밝혀지는 3번의 반전이었습니다.
"만일 키프로스의 동지들이 사고가 아니라 로켓탄에 죽었다면, 그 현장의 영상이 있었다면, 술집 손님들은 서커스의 호랑이를 보듯 즐겼겠지. 나는 그때 교훈을 얻었다."
말에 굳건한 힘이 돌아왔다.
"자기가 처할 일 없는 참극은 더없이 자극적인 오락이야.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끔찍한 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말하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런 오락인 거야. 그걸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이미 실수를 저질렀다. 되풀이할 생각은 없어."
오락이라는 말이 가슴을 도려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오락거리로 기사를 써왔던 건 아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은? 정보는 거센 물살이다. 일일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령 내가 왕족들의 시체 사진을 제공하면 당신의 독자들은 충격을 받겠지. '끔찍한 일이야'라고 말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겠지. 더 충격적인 사진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그건 그럴 것이다.
"혹은 영화로 만들지도 몰라. 그럭저럭 볼만하면 두 시간 뒤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비극을 동정하겠지. 하지만 그건 진실로 슬퍼하는게 아니라 비극을 소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 질리기 전에 다음 비극을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라제스와르는 나를 손가락질했다.
"다치아라이. 당신은 서커스의 단장이야. 당신이 쓰는 글은 서커스의 쇼야. 우리 왕의 죽음은 최고의 메인이벤트겠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힘껏 반박했다.
"준위, 전 그럴 생각은 없어요!"
"당신 마음이 문제가 아니야. 비극은 오락이라는 숙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사람들은 어째서 줄타기를 보며 즐거워할까? 언젠가 연기자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 네팔은 불안한 국가다. 그리고 어제 연기자가 떨어졌어. 흥미로운 일이지. 이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나도 즐겼을지 몰라."
라제스와르 준위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를 서커스로 만들 생각은 없다, 다시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만약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눈을 돌리고, 덮어둔다면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고 비극을 극복하며 밝은 길로 나아갈 수 있기라도 한다는 건가?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만 공감가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숙연해진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에필로그에서의 반전을 이루기도 합니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자가 범인이다'라는 특징이 있듯이 본 작품에서도 그럴것 같지 않은 인물이 범인이라는 반전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초반부터 던져지는 단서들로 인해 자연스레 추측이 가능하므로 다른 추리소설에서 느끼는 정도의 감상만을 가졌습니다. 인상깊은 부분은 이어지는 네팔 소년 사가르에 의한 2번의 반전입니다.

살인범이 알지 못하는 사이 범행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어낸 인물이 존재하며, 그의 의도가 마치의 성공을, 정확히는 그녀의 성공으로부터 얻을 떡고물이었다는 반전은 앞서 살인범이 남기고 간 '고귀한 가치는 연약하고, 지옥은 가깝다'는 '멀쩡한 겉모습 안에 숨어있는 인간의 또다른 면모'라는 본 작품의 또 하나의 주제로부터 연결되며 순진한 소년의 모습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이 마치와 독자에게 충격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에 관계된 모든 사실이 밝혀진 뒤 다시 한번 반전이 일어납니다. 본 작품에서 마치의 최대 적은 살인범이 아니라 사가르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으로, '보도'와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라는 두 주제를 연결되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악할만한 진실 앞에서 깨달음과 앞으로의 소신을 밝히는 마치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보도'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다치아라이 마치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 심플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현재 업으로 삼고 있는 연구와 개발에서 오는 책임에 대해서는 비슷한 점이 있어서인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why?'를 찾는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도 누구나 놀랄만한, 자기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예측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게되었습니다. 이 나이 즈음되면 크나 작으나 기대했던 인간으로부터의 배신은 몇 번 경험해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번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도 놀라웠지만, 이는 작가의 작품 구성과 전개력에 놀란 것이지 반전 사실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그러려니'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대처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네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야 어찌되었든 앞서 말했듯이 이야기의 구조나 마지막 반전, 그리고 네팔에서 있었던 실제 사실을 소재로하는 이야기는 정말 인상적입니다. 도입부가 '이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미스터리로 가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이야기가 굴러가기 시작하면서는 흥미진진함과 작품 주제에 대해 사색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책을 끝까지 읽은 것에 대한 보상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반전도 기다리고 있기에 유익함과 즐거움을 모두 갖춘 작품인 것 같네요. '베루프 시리즈'의 다음권도 기대됩니다.


p.s.
최근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배경이 네팔 카투만두였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배경설정임에도 상상하기가 쉬웠습니다.
더해 '보도'에 대한 것은 최근 나라를 시끌시끌하게 만드는 일을 떠오르게 만드는터라 여러모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덧글

  • 불멸자Immorter 2016/11/06 21:35 # 답글

    오...재밌어보이네요!
    다음에 한번 봐야겠습니다.
  • LionHeart 2016/11/07 12:10 #

    재미도 있었지만 긴장감 있는 전개나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활약하는 재미보다는 작가가 작품의 설계를 정말 잘했구나라는 것에 감탄하게 되는 편이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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