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을 꿈꾸는 마나카 쥰페이는 중학교 3학년 겨울에 운명의 그녀를 만납니다.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강렬한 딸기 팬티를 뇌리에 새긴 그녀. 그녀를 자신의 영화 히로인으로 삼기 위해 찾아다니던 중 학교 최고의 미녀 니시노 츠카사와 사귀게 됩니다. 하지만 딸기 팬티의 그녀는 사실 마나카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로 멋진 스토리를 썼던 눈에 띄지 않던 동급생 토죠 아야였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며 엄청난 미인으로 변신한 아야와 활발한 건강미녀 기타오오지 사츠키와 만나며 주인공의 연애사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주인공은 패버리고 싶을 정도로 우유부단하더군요.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도 약간은 있습니다만, 19권이라는 볼륨 중 90%는 여성들 사이에서 이 여자 골랐다가 저 여자 골랐다가 하며 울고 웃는 우유부단한 주인공의 이야기로 채워져있습니다. 멋진 여성들 사이에서 꿀만빠는 녀석을 보니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일어납니다. 히로인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어디가 아쉬워서 이런 못난이를'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은 남자답게 변해서 돌아옵니다만, 제 생각에 그는 히로인들에 의해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솔직히 '지나가는 행인 1' 정도의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요? 마나카 쥰페이는 제가 읽었던 작품들 중에 최악의 주인공 10에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 작품에는 동서남북 4방위 중 하나의 글자를 딴 이름을 가진 4명의 히로인 토죠 아야(東), 니시노 츠카사(西), 기타오오지 사츠키(北), 미나미토 유이(南)가 등장하고 저마다 연애에 관한 테마가 다릅니다. 토죠 아야의 경우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꿈을 가지고 시작하기에,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갈 사람으로 나타낼 수 있겠지요. 반면 니시노 츠카사의 경우에는 파티셰가 되기 위하여 주인공과 이별을 선언할 정도로 각자의 꿈을 소중히하면서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기타오오지 사츠키는 함께 있으면 편하고 즐거우며 늘 곁에서 응원해줄 수 있는 이미지이죠. 츠카사와 다른 것은 사츠키의 경우 본인의 꿈 보다도 연인과 함께하며 그를 응원하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거리감이 좀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미나미토 유이는 가족같은 느낌이군요. 이처럼 테마도, 성격도, 외모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히로인들을 응원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외모도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각자의 꿈을 존중하며 터치하지 않는 니시노 츠카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이것만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츠카사를 압도적으로 좋아했습니다만 다른 히로인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늘 솔직하게 대해주는 사츠키도 좋았고, 츤데레인 소토무라 미스즈도 좋았습니다. 미스즈의 경우는 같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토죠 아야와 비슷한 포지션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야보다 미스즈가 더 취향이었어요. 후일담에서 대학에 들어가 드센 성격의 그녀가 내성적인 만화가 청년과 동거하는 전개를 보고 흐뭇했습니다.
이 작품이 과거 유명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결말 때문이었지요. 누가보아도 메인 히로인은 토죠 아야였건만, 정작 맺어진 것은 니시노 츠카사였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가장 인기있던 히로인과 맺어졌기 때문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서 비판이 적었던 것도 특이했습니다. 물론 토죠 아야의 팬 분들은 납득하지도 못하셨을 것이고, 통곡하셨겠지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고백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음에도 다시 읽어보니 19권이라는 볼륨에 비해 내용이 별로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주인공이 혼자 안절부절못한 내용이 거의 전부인 것 같군요. 연재 당시의 '누구와 맺어질까?'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점, 서로 다른 히로인을 지지하는 독자들끼리 히로인의 매력을 어필하는 재미가 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전자책으로 저렴하게 접해볼 수 있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옛날 러브코미디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 이미 읽었지만 추억의 히로인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분들께서는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글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건 아닌가 걱정이긴 한데, 쥔장님께 이 덧글을 다는 이유는 혹시 본문에 언급한 요즘의 러브코메디...장르중에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작품이 있나 해서요.
그나마 최근에 본 게(완결까지 가진 못했지만) 니세코이 였습니다. 중간중간 가슴 저릿한 씬이 없던 건 아닌데 너무 하렘물이기도 하고 작품성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더군요.
이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추천하는 작품은 '우리들은 모두 카와이네'입니다. 하렘물도 아니고 고2 주인공이 한 눈에 반한 같은 학교 선배와 거리를 좁혀가는 이야기입니다. 둘다 조금 답답한 성격이라 연애진도는 다소 더디지만, 주인공이 살고 있는 하숙집 카와이장 주민들이 너무 유쾌한 인물들 뿐이라서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스킵비트'는 오랜 세월을 바쳐 사랑한 소꿉친구가 자신을 버리는 것을 계기로 복수를 위해 연예계에 들어간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연예계 활동에 푹 빠져버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히로인이 에너지 넘치는 성격이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연재분량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연애 진도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언제 완결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50권일지 100권일지....
'변녀'는 도우미 일을 시작한 주인공이 회사 사장 딸이자 남자의 발기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이상한 여고생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권은 막 데뷔해서 그렸는지 그림이 미묘하지만 2권 이후부터 일취월장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 선을 넘지 않고 있지만 대사는 밖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야한 작품으로, 히로인의 엉뚱함과 이에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위의 작품들을 보아하니 최근 저는 아련함이 있는 작품들은 순정만화나 본격 연애만화('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와 같은)를 읽고, 러브코메디로는 큰 웃음을 주는 쪽에 초점을 맞춰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
추천한 작품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다만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이외로 주인공이 꿈을 위해서 노력한 것은 별로 없지 않나란 생각이 듭니다. 영화감독의 꿈을 위한 활동이라고는 1년에 한번 영화를 찍은 것 정도라서 부활동 이상의 활동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 권 직전까지 연애 관련된 고민만큼 장래, 꿈에 대한 고민을 했나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결심과 행동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낼만 하지만 전 그 전까지 보여준 모습들에 아쉬움을 크게 느꼈던 것 같네요. ^^;
저는 아야 편이라서 그때 당시에 츠카사랑 이어지는것에 대해 엄청 불만이였는데,
32살 먹고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왜 츠카사랑 잘 됐는지 알것 같더군요.
제가 마나카라도 츠카사를 선택 했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마음 저편에 아야가 불행해서 이번에 east side story에서 마나카랑 아야랑 이어져서 아야가 행복해지길 바래봅니다.
세월이 흘러 작가님의 그림실력과 생각도 이전과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그려주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