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 김해경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세상이 인간의 세상인 현계와 신과 귀신들이 사는 환계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같은 반 친구인 운학과 위나가 환계인이었으며 자신은 현무왕 해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억과 능력을 잃은 그는 차례차례 두 세계를 위협하는 사건과 마주하며 어째서 과거에 하나였던 세계가 둘로 나뉘었는지, 자신은 어째서 기억과 능력을 잃었는지, 진실을 알게 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의 고대 별자리 구분법인 28수로 점을 치는 수요점성술을 소재로한 이 작품은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으로 어린 나이였던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습니다. 28개의 별들에 해당하는 성신들이 현무, 청룡, 백호, 주작에 각각 7명씩 배치된 환계인들의 싸움은 지금 다시 보아도 매력적이네요.
주인공 김해경은 현무 두성(斗星)인 현무왕이며 그는 선인인 구천현녀의 수제자로서 명음저를 하사받고 시해지술을 전수받은 인물입니다. 본 작품의 최종 보스는 주작왕인 주작 각성(角星)인 희안으로 머리도 뛰어나고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으며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쉽게 볼 수 없는 동양 판타지는 지금도 좀처럼 볼 수 없지요.
설정 뿐만이 아니라 김해경, 현무왕 해등의 기억을 되찾아가며 밝혀지는 진실들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본래 이야기 속에서 미스테리라는 것은 최종보스의 음모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종보스가 누구인지? 그의 목적은 무엇인지? 어떤 수단을 통해 목적을 이룰 것인지?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최종보스가 주작왕이고, 대결계에 의하여 나뉘어진 두 세계를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한다는 목적의식이 초반부터 뚜렷하게 밝혀져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작품의 미스터리는 주인공인 해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습니다.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 속에서 주인공의 모습은 주작왕과 같은 편으로도 보이고, 적대하는 관계로도 보이며 시시각각 모습을 바꿉니다. 주작왕과 같이 대결계 생성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청룡왕의 성신을 죽이고 청룡왕과 그 성신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계를 만들어 대결계를 지키고 현무왕의 소중한 이들이 주작왕에 의해 험하게 다루어지는 적대적 모습. 과연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해등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떠오르게 만들며 이것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이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 역시 많이 존재합니다.
일단은 그림이군요. 어시스턴트나 시간적 금전적 지원이 풍부하지 못한 한국의 처지 때문인지, 그림이 좀처럼 정돈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8수 별자리에 해당하는 성신들과 그밖의 환계인과 몇몇의 인간들을 포함하면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모든 성신들이 활약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본 작품은 주연조차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인 현무왕 해등은 인간인 김해경의 모습과 현무왕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이 거의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현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과 인간관계가 빛을 받지 못했고, 김해경의 어머니와 선아영의 존재 역시 존재감이 희미합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찾으면 거의 기계적으로 이를 따라가는 편이며,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에 대한 갈등에 대한 묘사가 무척 적습니다.
그렇다면 환계인들의 대우는 좋았는가? 위나, 운학, 견우는 비교적 초반에 동료로 등장하며, 여기에 능연, 무호, 아마라가 추가되지만 이들은 속된 말로 졸개나 다름 없습니다. 해등의 손에 죽은 동생과 관련된 운학의 에피소드도 거의 없다시피하며 메인 히로인 포지션인 줄 알았던 위나는 졸개 파티의 탱커 수준의 활약만 보여줍니다. 견우는 가장 발랄하고 말이 많은 분위기 메이커이긴 합니다만 파워업을 하든 어쨌든 졸개 파티의 일원일 뿐이고, 나중에 합류한 3명은 힐러입니다. 심지어 해등과 함께 싸우기 보다는 늘 졸개들과 싸우며 시간을 버는 역할을 맡으며 뭔가 의미있는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드뭅니다. 대부분의 일처리는 해등, 추적자인 서량, 그리고 서량의 반려자(?)인 청광이 해내고 있으며, 남은 이들은 시간을 버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해등의 각성의 계기를 주었던 우완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너무 약합니다. 너무 갑툭튀했다가 죽어나갔고, 해등의 성격 자체가 너무 말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표현하다보니 둘 사이에 있을 유대가 전혀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완의 죽음으로 인한 각성도 어리둥절 할 뿐이죠.
가장 제대로 다루어졌다 여겨지는 것은 주인공인 해등도 아닌 청광과 희안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이해하기 쉽거나 다른 인물들보다 내면 묘사를 자세하게 함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결말입니다. 너무 시시하게 끝이 난 느낌이지요. 작가님께서 '봉신연의'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최종 결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라거나 모든 갈등이 풀리고 결말에 다다르는 달성감,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부족하다 느낍니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흥미로운 설정과 시나리오 덕분에 17년이 지난 지금도 즐겁게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원작 코믹스를 리메이크하여 다시 그리는 경우가 종종 보이던데, 본 작품 '수요전'도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정돈하여 보다 미려한 그림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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