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의 이야기는 원작의 이야기가 끝나고 2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연쇄 유아 유괴 살인사건의 진범은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지만, 그의 수기가 발견됨과 함께 심리상실자의 불처벌로 인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고 맙니다. 검찰은 곧바로 상고하였지만 범인은 어째서인지 무죄판결을 받아낸 변호사를 해고하고 국선변호사 선임을 의뢰하고, 여기에 코바야시 켄야가 지명됩니다.
책의 구성은 발견된 범인 '야시로 가쿠'의 수기 내용과 코바야시 켄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수기 내용은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켄야의 이야기도 '어째서 천하의 악당 야시로의 변호를 수락하였는가?'라는 본인도 궁금해하는 질문을 독자가 함께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지만 역시 과거를 돌이켜보거나 수기의 내용을 쫓는 것으로 많이 채워져 있어 전개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밝혀지는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진짜 바보란 스스로를 바보라고 의심해본 적 없는자- 그렇게 규정하고 있던 제 자신이 바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가 잃어버린 것을 가지러 가주는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일까. 친절? 오지랖? 또는 성인이나 할 수 있는 소업?"수기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스파이스'라는 존재 때문에 야시로는 심신상실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변호인으로서 그리고 사건에 연루된 한 사람으로서 켄야가 '스파이스'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 책 전체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원작을 읽었던 독자들은 '스파이스'는 야시로가 어렸을 적에 키웠던 햄스터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후지누마 사토루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기에서는 햄스터이자, 후지누마 사토루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무엇이기도 하였기에 그 정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작가 나노마에 하지메 님은 '스파이스'의 개념을 확장하여 '용기'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슬쩍 방청석에 눈길을 주자, 후지누마 사토루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야시로의 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에 야시로 가쿠는 한 번도 방청석을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 자신의 숙적이자 동지이자 또 하나의 '의지'를 체현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아니, 그런 경박한 단어들보다 먼저 나와야 하는 필요 불가결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용기입니다."
"도저히, 당장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용기입니다."
원작에서 후지누마 사토루에게 패배한 야시로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을까? 원작에서 보여준 야시로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게임에서 졌으니, 나의 패배다. 모든 승리의 영광을 너에게 넘기마'같은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파이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사건이 끝난 뒤에 있을 '야시로의 깨달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후지누마 사토루를 자신이 잃어버려 일탈하게 만든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몇 번이고 미래에서 돌아와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주는 '커다란 용기'로서 인식하고 이를 고백하는 장면. 그리고 그 용기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당당히 사형 선고를 받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스파이스'의 재해석에 그치지 않고 이를 '나만이 없는 거리'라는 제목의 재해석으로 연결합니다. 전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께서는 원작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이 '나만이 없는 거리'라는 작품의 진정한 완결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원작을 읽어보신 독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중 야시로가 켄야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 인용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을 최근에 읽게 된 것도 마치 이 책을 읽기 위한 운명의 인도였다고 느껴질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이런 멋진 소설을 써주신 니노마에 하지메 님, 그리고 이 시리즈를 태어나게 해주었던 원작자 산베 케이님, 마지막으로 스핀오프 소설임에도 국내에 출판해주신 소미미디어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어."
...
"하지만- 그곳에 나만이 없었어."
덧글
하지만 원작과는 결말 부분이 다르니, TVA를 재미있게 감상하셨다면 코믹스 원작도 추천드립니다.
덤으로 이 영상 추천드립니다 야시로와 거미줄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가 쏙쏙 되더군요
https://youtu.be/scZscim-6NQ?t=5m51s
영상 잘 보았습니다. ^^
음...개인적으로는 소설의 거미줄에 대한 해석 쪽이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듭니다. 물론 주인공이 야시로를 위해 시간여행을 반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을 위한 것인 듯 납득한 소설 속 야시로의 고백은 미묘한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알고 벌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요? 저는 역시 원작보다 소설 쪽 결말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재밌더군요 소장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아직 원작 9권 한국 정발 안되었으니 정발되면 그거 사는거로 바꿨습니다
아무래도 원작이 짱이라서 원작 모으는게 우선ㅎ
사토루가 식물인간 상태일 때 친구들이나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사이드 스토리 모음집이라고 들었습니다. ^^
전 작품을 보는 시야가 1차원적이라서 hansang님 리뷰가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