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반의 전쟁: 진짜 쩌는 SF 소설 Books

이 책은 '깨어난 괴물'에서 이어지는 익스팬스 시리즈 2번째 이야기입니다. 2부 역시 1부 때와 마찬가지로 2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네요. 이전 이야기에서 기업 프로토젠의 음모로 동료를 잃은 제임스 홀던은 세레스 스테이션의 전직 형사 밀러와 함께 프로토분자로 오염된 에로스 스테이션으로부터 인류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프로토분자는 여전히 금성에서 활동을 계속하며 인류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그러던 중 인류의 최대 식량공급 기지인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서 다시 한번 우주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소행성대의 식량공급 기지인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 거대 유리와 온실 돔으로 23세기 우주의 인류를 먹여 살리는 평화로운 위성에 다시 나타난 프로토분자 괴물. 전편 《깨어난 괴물》에서 금성에 매장해버린 줄 알았던 외계생명체는 이제 단순한 좀비가 아니라 인류의 과학을 배우며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진 열여섯 명의 아이들. 지구와 화성은 가니메데를 두고 일촉즉발의 전운에 휩싸인 가운데 또 다시 그 중심에 놓이게 된 제임스 홀던 선장과 로시난테 호의 승무원들은 어떻게 태양계와, 잃어버린 소녀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외계생명체와 함께 금성에 추락해서 사라진 밀러를 대신해서 새로이 등장한 막강한 인물들. 동료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거대한 체구의 여자 해병대원, 손녀들에게는 인자한 할머니이지만 공석에서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UN의 권력자, 그리고 딸을 빼앗긴 식물학자. 전작부터 돈키오테처럼 ‘해결사’가 된 전 우주적 트러블메이커 홀던 선장. 접점을 찾기 어려울 법한 네 인물이 연극의 한 장면들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데….
1부 '깨어난 괴물'에서는 두 명의 주인공 홀던과 밀러의 시점이 번갈아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습니다만 2부에서는 보다 많은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2미터가 넘는 거구에 100kg이 넘는 몸무게를 지니고 있으나 이성을 매료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군인 화성 제2해군원정군 소속 로버타 W. 드레이버(바비) 이등중사, 사랑하는 가족에게만 약한모습을 보이며 일하는 곳에서는 입이 거친 할머니 UN행정부 사무차장보 크리스젠 아바사랄라, 그리고 가니메데의 생물학자이자 잃어버린 딸을 찾기위해 동분서주하는 프락시디케 멩(프락스), 그리고 1부의 주인공 제임스 홀던, 이렇게 성별, 연령, 위치, 전공이 다른 4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가니메데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교차하고 수렴되며 하나의 결말로 나아가는 전개가 흥미진진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크리스젠 아바사랄라입니다. 드라마 시즌1에서 등장했던 인물이 원작 2부에서 등장하는군요. 아바사랄라는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1부의 밀러와 같이 제임스 홀던과 함께 2부의 또 한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비의 경우 외모나 능력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이야기 전체적으로 보면 큰 활약을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가니메데 사건의 산증인, 아바사랄라의 보디가드, 로시난테의 무기관제 담당 역할을 맡았지만 문제 해결의 중심에 위치하지는 않습니다. 프락스는 심신상실에 이를 정도로 간절히 실종된 딸을 찾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로시난테 일행에게 실종사건이 가니메데 사건의 실마리라는 것을 전달하고, OPA에서 잘린 그들의 돈줄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니메데 사건을 해결하는데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바사랄라는 지구부터 로시난테에 승선하는 여정 동안 끊임없이 정치 싸움을 합니다. 독자는 이제까지 총싸움과 함대전으로 이루어진 싸움과는 다른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치 혀로 음모를 부수고 적을 함락시키는 모습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리고 금성에 관한 요약 보고서가 필요해. 가장 최신 걸로. 그리고 그걸 읽겠다고 박사 학위를 하나 더 딸 시간은 없으니까 간결 명확한 언어로 작성하지 않으면 그 개자식은 쏴 죽여 버리고 제대로 쓸 줄 아는 다른 놈을 고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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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씹할 새끼들."
"네?" 소렌이 물었다.
"장군들 말이야. 모조리 씹할 사내새끼들이라고."
"전 사우더 제독 장군님만 그러는..."
"그 인간들이 남자랑 씹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전부 씹새끼들이라고. 여자가 군부에서 높은 자리에 앉았던 게 도대체 언제지? 적어도 내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은 한 번도 못 봤어. 그래서 방 안에 테스토스테론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삽질을 하게 되는지 또다시 뻔한 꼴이나 보는 거지. 그리고 보니 생각났는데 시설관리과의 아네트 라비르를 연결해줘. 난 응우옌 제독을 믿지 않아. 누가 됐든 그 작자와 통신량이 급증한 총회 의원이 있으면 내가 알아야겠어."
소렌이 큼큼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죄송합니다만, 사무차장보님. 방금 저한테 응우옌 제독의 통신 내역을 감청하라고 지시 하신 겁니까?"
"아니, 난 그저 모든 네트워크 트래픽을 포괄적으로 감시하라고 요청한 거지. 다만 응우옌 제독의 집무실 외에 다른 곳에서 수집된 결과는 눈깔 하나 주지 않겠단 소리야."
"알겠습니다. 제 실수군요."
아바사랄라의 원작 설정은 드라마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단호하고 때로는 악랄하다 싶을 정도의 책략을 구사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차분하고 점잖은 할머니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씨발'을 입에 달고 사는 매우 거친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욕쟁이 할머니 아바사랄라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제임스 홀던은 2부에서 다시한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부에서 정의감 넘치던 모습은 프로토분자에 대한 공포심과 밀러에 대한 죄책감 등이 겹치며 변질되고 맙니다. 밀러와 같이 모든 일을 폭력으로 해결하려하고, 지나친 피해망상을 지니게 되어 로시난테의 동료들과 마찰을 빚어 결국 사랑하는 연인 나오미와 파국에 이르는 지경까지 갑니다. 그러나 자기반성과 나오미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홀던의 심적 변화를 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자신을 되찾은 것같으니 이제 나오미와의 관계를 해결하는 일이 남은 것 같습니다. 홀던은 후손을 원하고 있지만 나오미는 그렇지 않은 것 같기에 3부에서 이에 대한 갈등이 예상되는군요.

홀던의 성장과 함께 로시난테 일행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집니다. 개성도 종족도 서로 다른 그들이 이제는 어떤 일이 터지면 누가 나서는 것이 최적인지 이해하고 있으며,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영웅의 파티가 된 로시난테 승무원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로시난테 승무원의 에이모스는 깡패같이 폭력적이고 거친 남자였지만 프락스의 실종된 딸을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밝혀진 그의 과거,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메이를 찾는 모습, 메이를 되찾아 함께 노는 모습에서는 마치 친구같은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그의 매력이 올라갔습니다. 에이모스는 이번 로시난테 승무원 중에서 가장 많은 활약과 변화를 보여주었던 숨은 주인공이었습니다.

SF설정도 흥미로운 것들이 있었습니다.
화성인 바비가 지구에서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공황이 오는 장면이 그 중 하나입니다. 평생 돔에서 생활하는 화성인이나 소행성 주민들은 지구 표면에서 느낄 수 있는 넓은 하늘과 지평선을 견디지 못하고 공황에 빠진다는 설정입니다. 현대에서 가장 비슷한 것은 평생 좁은 방에 갇혀 살던 사람이 해방된다거나, 환경 탓에 지하에서만 살던 사람이 지표에서 살기 쾌적한 나라로 이동했을 때 같은 것일까요? 실제로 미래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더해 프로토분자 괴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은 호러게임으로 만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 프로토분자에 의해 엔진이 정지하고 모든 조명이 꺼진 애거서 킹 호 함선 내부에서 괴물들의 습격으로부터 홀던이 도망치는 장면이라거나, 이오 행성에서 무선기능이 정지하는 것으로 프로토분자 괴물의 접근을 눈치챈 바비의 모습을 SF호러 게임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종된 메이를 쫓는 수사물, 적병 및 괴물들과 싸우는 총싸움, 우주에서 벌어지는 함대전, 치열한 정치 싸움이 모두 담긴 2부는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었습니다. 작가 존 스칼지 님의 SF 소설과 함께 제가 읽은 소설들 중 가장 재미있는 SF소설이 되었습니다.
금성에서 뛰쳐나온 프로토분자가 인류에게 어떤 위협이 될지,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밀러가 다시 한번 홀던의 눈 앞에 나타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3부를 읽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국내 출판된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출판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S. 흥미롭게도 작중에 등장하는 우주선 이름 중 하나가 '김대중호'입니다. 1부에서도 잠깐 한국어를 하는 엑스트라가 있었는데, 외국 소설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무척 반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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