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하츠: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와 매력적인 그림이 함께하는 작품 Comics

모치즈키 준 작가님의 판타지 만화로 단행본 24권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국내에도 전권 정식 발매되었으며,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전 이 작품을 최근에 알게되었습니다. 표지를 봐서는 그림이 마음에 들긴 한데, 1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주인공이 소년인 것 때문에 읽지 않았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어린 소년이 활약하는 판타지물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더군요. 그러던 중 전자책 전권 세트 팔인 판매가 이루어졌고, 6권 표지를 장식한 샬롯 바스커빌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조차 다른 이세계 '어비스'와 그곳에서 태어난 존재 '체인'. 몇몇 사람들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과거조차 변경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체인들과 계약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입니다. 이런 범죄를 막기 위한 조직 '판도라'는 체인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계약법을 고안하고, 체인의 힘을 빌려 범죄를 일으키는 계약자를 찾고 처벌합니다. 주인공 오즈 베델리우스는 어비스와 체인의 존재조차 모르고 곱게 자란 4대 귀족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성인식 때 어비스에 떨어져 다른 체인과 달리 사람의 형태와 인격을 가지고 있는 '비 래빗 앨리스'와 계약하게 되고, 판도라의 조직원과 만나게 됩니다. 어째서 자신이 어비스에 떨어져야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흩어진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앨리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판도라와 행동을 함께하고, 100년에 걸쳐 진행 된 음모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복선 회수와 반전입니다. 시작은 여느 판타지 만화와 같이 부조리한 운명에 마주한 소년의 모험, 그리고 BOY MEETS GIRL 스토리입니다. 앨리스의 과거가 밝혀질 수록 이야기는 100년 전 도시 하나가 어비스로 떨어진 '사블리에의 비극'과 연결되며, 영웅 쟈크 베델리우스와 비극의 주모자로 알려진 글렌 바스커빌의 존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쟈크의 인도로 글렌의 음모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 일행. 여기까지는 전통 판타지 스토리다운 전개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뒤집히는 극적인 전개를 맞이하며, 이제까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맞물리지 않던 이야기의 조각들이 급속도로 맞추어지기 시작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빠른 속도로 비극으로 굴러떨어지고, 새로이 밝혀지는 사실과 잔혹한 전개로 독자를 경악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 도달한 최종장에서는 이별의 아픔과 인생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게 만들며 긴 여운을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이렇듯 이야기 자체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연재 중에 끼워맞춘 것들이 아닌 연재 초기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더욱 놀라게 만들어줍니다. 24권 결말까지 모두 읽은 독자들은 1권부터 24권까지 단행본 표지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점들이 계획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에 의한 비극과 사랑에 의한 구원으로 끝나기 때문에, 모험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랑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한 작품입니다. 소년만화라기 보다는 순정 판타지 만화에 미스테리를 추가한 듯한 작품이기에 여성 독자분들께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저 역시 사랑을 찬미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하지만 역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 속으로 밀어넣은 단 한 남자의 사랑은 인상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에 미친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나쁜 놈이긴 했지만 이처럼 미칠 정도로 사랑할 수 있었다는 점은 좀 부럽군요.

작중에 등장하는 '체인'이라는 어비스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계약한 인간들에게 특수한 능력을 부여해줍니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체인들은 모두 작가 루이스 캐롤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메인 히로인 이름이 앨리스이며, 그밖에도 매드 해터, 재버워크, 붉은 여왕, 험프티 덤프티, 하얀기사, 트위들덤 & 트위들디, 체셔 캣, 마치 헤어, 도도새, 도마우스, 래빗, 그리핀, 사자, 유니콘 등이 그렇습니다. 보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설정과 내용이 재미있었는데 이 작품 역시 원작이 주는 신비함과 만화에서 부여한 이능력 배틀 속성으로 작품의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정말 많은 인물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이쁜 그림으로 그려진 인물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비극과 등장인물 사망에 익숙해지지 않는 저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멘탈이 깎여나가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끝까지 읽었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점은 제가 얼마나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했는지 보여줍니다.

굳이 단점을 들자면 종종 오글거린다고 해야할지 닭살 돋는 부분이 있다는 점인데, 이 역시 이야기가 재미있다보니 작품의 개성으로서 여겨지는군요.
이 작품을 잡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던 6권의 표지를 장식한 샬롯 바스커빌.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읽었는데 정작 작중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바스커빌의 목적을 위해 빈센트의 따까리 노릇만 하고, 모자장수에게 맨날 당하는 역할만 맡은 것 같습니다. 과거편에서 무척 귀여웠고, 최종장에서 바스커빌의 백성들 중 유일하게 다른 길을 제시했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정작 작품을 읽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9권의 표지를 장식한 에코입니다. 인형같은 귀여움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틋한 느낌이 들어 지켜주고 싶은 느낌이 드는 캐릭터였습니다. 메인 히로인인 앨리스보다 주인공 오즈와 러브라인을 강하게 맺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지만 비극적인 운명 때문에 더욱 빛이 났던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남성 캐릭터들도 정말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권 표지를 장식한 쟈크시즈 브레이크와 15권 표지를 장식한 루퍼스 바르마가 마음에 드는군요.
쟈크시즈 브레이크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전투력이 최강인데다가 친구인 레임 루넷과 여동생 격인 샤론 레인즈워스를 위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재수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음에 안드는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장난섞인 독설을 내뱉지만,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장난끼 있거나 냉소적인 평소의 모습을 버리고 그 누구보다 뜨겁게 분노하는 갭이 매력적입니다. 시력을 잃고,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소중한 이를 위하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루퍼스 바르마의 경우는 정보와 지식에 집착하는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기인으로서의 개성과 샤론 레인즈워스의 할머니 셰릴 레인즈워스에게 일편단심인 그의 사랑이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나에게 있어 '지식'이란 어디까지나 살기 위한 '무기'일 뿐, '목적'은 아니야. 그 점이 나와 이슬라 유라의 결정적인 차이지.
난 이렇게 생각한다.
거룩한 것, 아름다운 것. 인생의 모든 걸 걸기에 마땅한 절대적인 존재.
그건 곧.
사랑이다.
반세기 동안 셰릴과 결혼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는 그의 순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냉정하고 실리를 따지는 것처럼 보이던 루퍼스 바르마 마저 사랑을 찬미하는 인물이었으니, 이 작품이 얼마나 사랑을 중요시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한 샤론 레인즈워스는 정말 매력적이었지요. 애초에 할머니인 셰릴 레인즈워스부터 시작해서 레인즈워스 가문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매력덩어리들 뿐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레인즈워스의 개(신하)로 태어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밖에 루퍼스 바르마의 오른팔이자 쟈크시즈 브레이크의 절친한 친구 레임 루넷도 마음에 들었고, 그와 인연을 맺었던 귀염둥이 릴리 바스커빌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필로그에서 레임과 함께 있는 릴리의 모습이 매우 작게 한 컷 뿐이었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엄청난 미녀로 자란 오즈의 여동생 에이다 베델리우스도 좋았군요.


이야기가 워낙 치밀하다보니 심심할 때 잠깐잠깐씩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한번 읽으면 끝까지 읽어나가야만 하는 성격의 작품입니다. 그림도 이쁘고 이야기의 완성도도 높은 무척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최근 신작 '바니타스의 카르테'를 연재 중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도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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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ㅅㅇ 2017/10/02 10:55 # 삭제 답글

    저도 정말 좋아하는 만화입니다! 리뷰 잘 쓰셨어요ㅎㅎ
  • LionHeart 2017/10/02 23:29 #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글이 이상한 부분이 많아 부끄럽네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에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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