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서 너와: 8명의 작가가 그리는 8집의 이야기 Books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작가 미카미 엔 님의 작품 중 국내에 출판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미카미 엔 님 외에 요시카와 토리코, 니타도리 케이, 도쿠나가 케이, 사카키 츠카사, 코시가야 오사무, 아스카이 치사, 아사이 료 님께서 참여하였으며, 각 작가 분께서 하나의 숙소(쉐어하우스, 자취방, 호텔, 맨션 등)에서 이루어진 드라마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럼 둘씩 짝을 지어주세요 - 아사이 료
언니가 집을 나가게 되며 혼자 남겨진 집을 쉐어할 상대를 찾는 리카의 이야기입니다.

쉐어할 상대가 결정도 되기 전에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돈을 낭비하는 헛짓거리가 눈에 거슬렸던 이야기였습니다. 더 짜증나는 것은 못난 자신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점이었군요. 계획이 박살난 마지막까지 태도가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모자란 것인지, 아니면 모자란 자신도 받아들이고 뚝심있게 사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저에게 리카는 불편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웃 하늘도 푸르다 - 아스카이 치사
여자친구와 싸우고 한국으로 출장을 오게 된 타카하타는 자신과 성격과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선배 노나카와 같은 호텔 방을 쓰게 됩니다. 한국에서 일을 할 수록 노나카에 대한 불만은 쌓여만 갔지만 일본을 혐오하는 한국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노나카의 모습과 여자친구 카나에 대해 새로운 면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국으로 출장을 온다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반가웠지만 양국의 관계를 조명하는 이야기는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지나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고, 이렇게 일본 소설을 읽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이 피해자라고 사실과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제 DNA에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 책에 실린 이야기가 누가 좋다, 나쁘다가 아닌 어느 쪽에나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이해하고 가까워지고자 노력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지만 '너희가 할 말은 아니지'라고 딴죽을 걸게 됩니다. 노나카의 과거사를 꺼내며 '상처받아 생긴 분노와 원한을 그 상대방과 닮은 누군가에게 쏟아내는 것은 간단하고 편한 방법이지.'라며 그런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허? 지금 싸우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제가 너무 비뚤게 보는 것일까요?


점핑 니 - 코시가야 오사무
대학 시절 사귀던 두 남녀가 시간이 지나 도쿄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각자의 꿈을 쫓으며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던 그들은 다시 의기투합하며 동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만화가를 지망하며 치열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토모미는 막연한 꿈을 꾸며 현재에 만족하고 노력하지 않는 남자친구 나오토를 못마땅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꿈을 목표로 만드는 사람과 지금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사람을 비교하며 그리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지면서도 쿨했던 마지막 이별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여자적 생활 - 사카키 츠카사
함께 살던 친구가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로 하고 떠난 뒤, 고등학교 동창 고토가 코가와의 집을 찾아오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코가와는 트랜스 젠더입니다.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의 삶을 좋아하여 여자로 착각할 만큼 스스로를 꾸미고 다니지만, 정작 좋아하는 상대는 남자가 아닌 여성입니다. 여성의 마음과 남성의 욕망(?)을 함께 지니고 있는 인물로 처음 보는 스타일의 주인공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장 속 - 도쿠나가 케이
앞집 여자가 딸을 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초등학생 소녀를 주인공이 일시적으로 맡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여자가 다 있나 싶은 분노와 함께 어리면서도 울고 떼쓰지 않는 조숙한 아이의 모습에 대견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만화와는 달리 이 소설에서는 현실적으로 잘나가는 할머니가 찾아와 소녀를 데려가며 끝이 났습니다.


18층의 잘 나는 신 - 니타도리 케이
유일한 판타지입니다. 어느 날 TV에서 사악한 것이 자신을 노린다는 경고를 받은 주인공은 거대한 지네와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는 소녀와의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주인공은 지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소녀와 함께 살게 되며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게 됩니다.

이야기가 '반전으로 XX가 사악한 존재'이거나 '아, ㅅㅂ 꿈'이거나 겠지...싶었는데, 너무나도 예상대로 흘러갔던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의 집과 동네가 쑥대밭이 된 것에 비하면 주인공의 태도가 너무 드라이해서 미묘했던 이야기였네요.


달의 사막을 - 미카미 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을 둔 언니, 야에와 그 여동생을 사랑하던 남자가 여동생을 도쿄 대지진으로 잃고, 결혼한 뒤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너무나 닮은 부부, 그렇게 야에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은 여동생의 대신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찬 삶을 살던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이를 토로하게 됩니다.

만약 서로 대화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으면, 혼자 오해하고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에의 생각과 감정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하는 모습은 두 사람의 성격과 슬픔을 잘 표현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집에서의 삶과 이러한 삶이 전통적인 것에서 현대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시기의 일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배경묘사도 좋았습니다.


중화 냉면에 마요네즈 - 요시카와 토리코
밴드를 했지만 인생 낙오자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히사키와 17년간 동거를 한 여성 미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힘들고 가난할 때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히사키는 실패하고 굴러떨어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돈도 제대로 내지 않게 됩니다. 미코는 자신이 그린 일러스트가 실린 작품이 성공하여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삶을 살게 되었지만 못난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미코가 히사키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걱정하여 함께 사는 것이 아닌, 진절머리나게 짜증나고 자신도 젊은 남자의 물주가 되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히사키와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결국 둘의 관계는 히사키의 잘못된 아랫도리 관리로 인해 끝이 납니다만 애증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판타지 한 편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실감나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은 인물들이나 이야기 소재도 있었지만 제법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군요. '집'이라는 소재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펼치는 8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도 흥미롭습니다.

특별함은 부족할 수 있지만 제법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전 미카미 엔 님 외에는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지만 나중에 재미있게 읽은 에피소드의 작가님들이 쓰신 책을 발견하게 되면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덧글

  • 레겐샤인 2019/06/21 06:31 # 삭제 답글

    뒤로 갈수록 점점 재밌어 지더군요
    특히나 미카미 엔 님의 소설은 가장 좋았습니다
  • LionHeart 2019/06/21 18:37 #

    미카미 엔 님의 이야기는 '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대의 흐름까지 잘 담아낸 이야기라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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